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포반도 전투 (문단 편집) == 결과 == 7월 3일 영등포와 인천이 북한군의 손에 넘어가면서 한강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되자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병력은 수원과 안양 방면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대가 재편되어 안양 방어선 전투에 투입되었다. 김포지구전투사령부는 병력과 장비가 모두 열악한 상황에서도 김포반도 전투에서 북한군 제6사단의 진격을 상당 기간 지연시킬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신속히 인천·수원 방면으로 진출해서 국군의 배후를 공격하겠다는 북한군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었다. 또한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활약으로 서부전선을 지키던 국군은 안전하게 한강을 건너 철수해 한강 방어전을 벌일 수 있었다. 국군이 처절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패퇴했기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사실 이 전투는 한국전쟁 초기 [[제6보병사단]]이 벌인 [[춘천-홍천 전투]]에 버금가는 의미가 있다. 2001년 공개된 소련 [[블라디미르 라주바예프|라주바예프]]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군은 김포반도를 통해 [[영등포]]를 점령하고 수원선으로 진출을 기도하는 제6사단과, 제12사단이 홍천을 돌파하면 이를 발판삼아 수원으로 돌진하도록 계획된 제603모터찌클 연대를 양익으로 하여 한국군 주력을 한강 북방에서 포위섬멸하겠다는 계산 하에 전쟁을 개시했다. 그러나 김포지구사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북한군 공세를 상당시간 지연시킴으로써 춘천-홍천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부전선에서도 북한군의 작전적 의도는 좌절되었다. [[춘천-홍천 전투]]가 북한군 2군단에 엄청난 타격을 입히며 춘천을 통해 수원으로 들이닥칠 북한군의 작전적 양익 중 왼날개를 꺾어버렸다면 김포반도 전투는 북한군의 오른날개가 펼쳐지는 것을 틀어막은 전투다. 거기에 사령관 도주와 사령관 대리 자살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장병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여 유기적인 방어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도 놀라운 평가를 받는다. 즉, 당시 한국군이 얼마나 처절하게 조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는지를 보여준 사례이다. [[분류:6.25 전쟁/전투]][[분류:1950년 전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